독일에서부터 기차가 연착되어 라우터브룬넨(Lauterbrunnen)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예정보다 2시간이 늦었다. 텐트를 세우고,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에 타프를 세우니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타프를 세우는 막대기를 구하려고 캠핑장을 한참 어슬렁거렸다.
유럽에 오는 친구를 통해서 한국에 있는 장비 중 폴대를 전달받기로 하였고,
앞으로는 필수품이 될 듯. 이번 여행이 고생스럽지 않았던 것은 90%가 타프 덕이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다.
한국에서 날아온 버섯과 황태를 불리는 동안 스위스 맥주를 홀짝이고
대기 중인 한국 볶음면과 소주 또한 훌륭한 만찬이 되었다.
빗소리와 텐트 옆 작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2박 3일간 잠시도 끊어지지 않았다.
밤이 되면서 숙소 쪽에 여행을 마친 차들이 여럿 들어왔으며
하늘이 좀 열리는가 싶더니 다시 비.
기상이 좋지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출발한 여행이었다. 괜찮다. 괜찮다...
* * * * *
일주일 전부터 이곳 관광안내소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고,
쉴트혼(Schilthorn 2970m)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간 후 7시간을 걸어내려올 계획이었다.
아침을 먹고 몇가지 장비를 챙긴 후 케이블카를 타는
스테헬베르그(Stechelberg 910m) 마을까지 1시간(5km)을 걸었다.
자연과 가장 잘 조화되는 사람은 아이와 노인이다.
인류 공통의 문화. 각각의 탑마다 염원하는 바가 다르겠지...
빙하수가 흐르는 거친 물살 너머에서 쉴트혼까지 오르는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쉴트혼까지 3번을 더 갈아탄다. 그러나 총 소요시간은 30분 정도로 지루하지 않았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스테헬베르그(Stechelberg 910m) 마을
그림멜발트(Grimmelwald 1363m) 마을에서 환승.
아이거 아래에 있는 그린델발트 마을과 스펠링/발음이 유사함에 주의!
라우터브룬넨 마을의 협곡 위에 있는 뮈렌(Muerren 1638m) 마을에서 다시 환승.
라우터브룬넨 역에서 기차를 타고 뮈렌 마을까지 올 수 있다.
결국 개인적인 바램과는 달리 하늘은 열리지 않았다.
3번째 환승역인 비어그(Birg 2677m)부터는 완전히 눈 속에 갇혀버렸다.
쉴트혼(Schilthorn 2970m) 전망대에 도착.
일대에서 007 영화를 촬영했기 때문에 케이블카 안에서는 계속 007 음악을 틀어주었고,
이곳이 스위스인지 007 홍보관인지 구분이 안될 지경이었다.
전망대의 제임스 본드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다.
나는 글루바인을 마시며 구름이 걷히길 기대했지만 1시간 반이 넘도록 기상은 점점 더 나빠졌다.
전망대 안의 007 본드 월드(Bond World)관은 잘 꾸며놓았다. 재미있는 아이템도 몇 가지 있었다.
예를 들어 아래 썰매를 타고 화면에 나오는대로 불길도 피하면서 악당에게 총질을 하면
그대로 자신이 촬영되어 영화 속 화면으로 다시 재생된다. 보기만 해도 웃게 되었다.
쉴트혼이 자랑하는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의 스카이라인의 '스'자도 못보고 내려왔다.
7시간의 트레킹 계획은 눈과 비에 말끔히 씻긴채 다시 스테헬베르그(Stechelberg) 마을에
돌아왔을 때 기상은 오전보다 더 좋지 않았지만 걷는 일은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이곳과 라우터브룬넨 마을 사이에 있는
트룸멜바흐 폭포(Truemmelbachfaelle)에 가보기도 하고 다시 걸었다.
케이블카역에서 버스를 타면 되지만 물가 트레일을 따라 그냥 걷는다...
아쉬움에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 * * * *
트룸멜바흐(Truemmelbach)는
아이거(Eiger 3970m), 뮌히(Moench 4099m), 융프라우(Jungfrau 4158m)의
빙하와 눈이 녹아 이곳의 바위 틈으로 흘러내리며 10개의 폭포(cascade)를 만든 곳이다.
연간 2만톤(초당 최대 2만리터) 이상의 물이 이 틈으로 흘러내린다고 하니
스위스는 진정 물이 풍부한 나라이다. 물의 반은 얼음과 눈을 포함하고 있다.
표를 끊고 들어오면 1분간 오르는 리프트를 탈 수 있다.
리프트를 타고 다시 계단을 올라서 제일 위 10번 폭포부터 1번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내려올 때도 리프트를 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 1~6번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므로 사람들에게 걸어서 내려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오버는 절대 금물. 한국 관광 문화에 태클을 걸지 말 것!
내 눈에는 10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10곳의 포인트를 만들었기에 10개라고 하는 듯하다.
폭포 물도 정신없이 튀기고, 비도 많이 내려 우산도 들어야겠기에 이래저래 불편했지만
그래도 사진 찍는 재미 또한 놓칠 수 없었다. 여행 중 한손으로 사진찍기의 달인이 되었다.
폭포가 들려주는 천둥같은 소리는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세상 무너질 듯한 소리를 들으며 혼자 우두커니 바라보는 폭포에서
자연 앞에 인간이 티끌 같은 존재도 아니라는 것... 찰나에 호들갑스럽게 머무는 존재일 뿐.
억겁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얼마나 세차게 부딛쳤으면 이런 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내려오는 계단에서 잠시 폭포 아래 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라우터브룬넨 마을 방향.
아래쪽 폭포의 이름이 아주 적당했다. 코르크 병따개 폭포라...
천둥소리를 머금은 빙하수가 마지막으로 바위틈을 휘감아 나온다.
마지막 1폭포까지 가슴이 터질듯한 풍경과 천둥같은 물소리를 들었다.
이런 물줄기가 여러 마을을 통과하며 24km를 거칠게 흐르다가
인터라켄의 툰(Thun)과 브리엔즈(Brienz) 호수를 만들어낸다.
빙하수는 2도의 수온으로 위험하다는 경고
트룸멜바흐 폭포를 잘 봐두었다.
거대한 바위가 틈을 만들고 10개의 케스케이드를 만들어낸 시간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가 고작 생각하는 시간은 약 100년이다. 그 안의 역사, 그 안의 인간사 정도가
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짧게 사는 사람은 허무하도록 잠시 머물기도 하는 인생.
이제 엄마는 세상에 없다. 나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와 같이
자연과 그 너머 우주의 시간에 비하자면 찰나의 순간 안에 사라질 것이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고, 마음도 정리되었다.
* * * * *
아쉬움을 저만치 두고 라우터브룬넨 마을로 걷는다.
빗속에서도 혼자서 꿋꿋하게 잘 버티고 있었던 나의 숙소
* * * * *
등산용 녹색 우산을 잃어버렸다.
다음날 인터라켄 오스트역으로 가는 기차가 막 출발하고 나서야 3번 승강장에 세워둔 우산이 생각났다.
기차를 기다리며 따뜻한 커피를 사서 마셨고, 그간 소중히 다뤄온 우산은 잊은 것이다...
날씨가 좋지않아 기차에서 바라보는 툰 호수도 빛을 바랬다.
이제 라우터브룬넨 방향의 알프스 여행은 그만해도 될 것 같다. 그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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