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미술(Flemish Art)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벨기에에 가야한다.
벨기에의 브뤼셀과 안트베어펜에 있는 왕립미술관의 훌륭한 작품들도 좋겠지만
진정, 플랑드르라 불리우는 지역의 그림을 느껴보려면 겐트(Gent) 미술관에 가볼 일이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핀란드 미술이 조금 이해되었다면,
겐트에서 벨기에 태생의 화가들이 남긴 많은 그림들을 보면서 플랑드르 미술이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마찬가지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에 둘러싸인 지대가 낮은 지역을 플랑드르라고 하였고,
지금의 벨기에 북부 지역에서는 '플라망어'라는 네델란드 언어를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플랑드르 화가로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브뤼헬(Brueghel) 및
루벤스(Rubens) 등이 있다. 이 외에 벨기에의 어떤 화가들이 유명한지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술관 입구에서 주는 종이 한장에 어느 방에 누구의 그림이
있는지를 기입해 놓았고, 그에 따라서 그림을 천천히 둘러보면 된다.
겐트의 중앙역 격인 겐트-세인트-피터스(Gent-St.-Pieters) 역에서 내리면
인근에 공원이 하나 있고, 이 공원으로 들어서서 걸기 시작하면 큰 건물(카지노)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에 미술관이 화려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계석도 없이 놓여있는 유럽 공원에서 마주하는 이런 비석들은 언제나 나에게 낯설다.
적게나마 눈이 내린 적이 언제였는데, 그리고 밤에는 영하의 기온에 걸치기도 하는데
아직도 여긴 가을이다. 유럽의 식물들은 참 튼튼하다...
겐트 미술관은 네델란드 남부의 프랑스령이던 시절인 1798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프랑스 점령 역사에도 불구하고 234점의 회화 및 조각 작품들을 빼앗기지 않았고,
현재의 건물은 건축가 Charles Van Rysselberghe에 의해서 고전적인 신전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이 곳은 1902년과 1913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4년 간의 리모델링을 통해 2007년에 재오픈하였다.
연중 300~350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중세 플랑드르 미술부터 20세기 작품까지 전시한다.
겐트 미술관은 플랑드르 미술의 거장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세계 100대 미술관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런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드물어 양질의 그림 유람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유럽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살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 동전없이도 이용가능한 락커에 짐을 넣어두고, 다시 올라와 9유로에 입장료를 구입하였다.
평면 구조의 미술관에는 많은 방들이 있는데 시대 순으로 오른쪽 1번 방부터
들어갔고, 파란색 부분은 기획전이 열리는 곳이다.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게 미술관의 안내를 잘 해주고 있는 안내문이었다.
Charles Henri Pille (1844-1897), Pilgrimage in Brittany
중세 성화를 모아 둔 방은 다른 큰 미술관들 처럼 다작도 아니고,
작품의 종류가 광범위하지는 않았지만, 미술적 가치가 출중한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시작되는 방에서부터 나는 화가들의 감각이 잘 표현된 생동감 있는 그림들을 마주했고
플랑드르 미술의 훌륭한 회화적 기법을 미약하게마나 이해해 나갈 수 있었다.
Jheronimus Bosch (1450-1516), Christ Carrying the Cross 1510-16
Jean-Baptiste de Champaigne (1631-1681), The Supper at Emmaus 1664
Anthony Van Dyck (1599-1641), Jupiter and Antiope 1620
루벤스(Rubens)와 반 데이크(Van Dyck), 샹파뉴(De Champaigne) 등의
그림이 있는 곳에서는 정작 집중하지 못하고, 그 뒤에 있는 어느 방에서 집중했다.
미술품을 어떻게 찾아서 복원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었는데
최첨단 장비들을 유리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은 금지)
브뤼겔 가문의 아들인 Pieter Brueghel II(1564-1638)의 그림 3점이 나란히 걸린 곳...
농민/서민들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는 정말 최고라 할 수 있다.
Pieter Brueghel II (1564-1638), The Peasant Wedding in a Barn
Pieter Brueghel II (1564-1638), Wedding Dance in the open Air
이 작품은 브뤼셀에서 봤던 '베를레헴 인구조사'의 작품 처럼
아버지(Pieter Brueghel I, 1527-1569) 작품에 대한 복사품이다.
아들은 아버지 작품 다수를 복사했었다.
Pieter Brueghel II (1564-1638), Village Lawyer 1621
1600년대에 회화와 똑같이 만들어낸 직물 작품들.
Adriaen Van Utrecht (1599-1652), Fishmonger's Stall
이 대형 작품에서는 그냥 혼자 웃고 말았다.
다양한 생선의 정물에 놀랐고, 여자의 비율이 이상한 것에 놀랐고,
뒤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 아니라 여자의 지갑 끈을 가위로 자르는 모습에 반전...
Charles De Groux (1825-70), The Expulsion
미술관에서 '추방'이라는 이 작품이 상당히 인상 깊게 남았다.
이 화가의 작품은 자신만의 상당히 강렬한 화법(?)을 느끼게 해 주었다.
Pierre Francois De Noter (1779-1842), Winter Scene in Ghent
이곳부터 플랑드르 미술이라 부르는 시대를 넘어서
19~20세기 작품들인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등의
사조를 거치는 많은 벨기에(및 인근)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Henri Evenepoel (1872-99), The Spaniard in Paris, The Painter Francesco Iturrino
Leon Frederic (1856-1940), Funeral Meal
Alfred Stevens (1823-1906), Mary-Magdalene 1887
Theo Van Rysselberghe (1862-1926), The Lecture by Emile Verhaeren 1903
George Minne(1866-1941), Fountain with Kneeling Youths 1905
밑의 물을 받치는 부분은 복사품(1927~30)
그런데 이 조각을 겐트 시내에서 실제로 보게 되었다. 뭐가 진짜인지...
Auguste Rodin (1840-1917), Head of Pierre de Wissant
워낙 유명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도 만나게 되었고...
아이들 한 무리가 견학을 왔는데 프랑스어는... 언제 들어도 참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Jozef Horenbant (1863-1956), A Sculptor's Workshop
원형 전시장 뒤로는 벨기에와 독일의 '표현주의' 작품들이 좌우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비교를 하는 재미가 어느 때보다 크게 다가왔다.
위 그림 3개와 아래 작품이 모두 벨기에 표현주의 화가 Jean Brusselmans의 작품들이다.
벨기에 사람 아니랄까봐 이름도 '브뤼셀만'스...
Jean Brusselmans (1884-1953), Spring
Frits Van Den Berghe (1883-1939), The Fall of the Saints
오른쪽 작은 그림은 1929년에 그린 습작
Frits Van Den Berghe (1883-1939), The Idiot by the Pond
Gustave Van De Woestyne (1881-1947), Fugue 1925
독일 표현주의 방에서는 독일 작가인 발터 메링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넋놓게 되었다.
그로즈(Grosz)라는 화가는 매우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풍자화를 많이 그렸는데
마찬가지로 발터 메링(Walter Mehring) 또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알아주는 풍자 작가였다.
풍자 화가가 풍자 작가를 그린다...
화가 뒤의 희미한 배경이 실컷 비꼬아준 자신들의 웃긴 실체를 가진 사회인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George Grosz (1893-1959), The Author Walter Mehring 1926
그림을 그린 시점을 고려하니, 작가 발터 메링은 담배에 불도 붙이지 않고 저 자세로 고민을 하다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탈출했는지도 모르겠다... 1981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
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 Villa in Dresden 1910
이 미술관이서 아주 훌륭한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짧은 생을 살았으나 리투아니아의 음악과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Mikalojus Konstantinas Čiurlionis(1875-1911).
작곡가이자 화가이자 사진가였던 치우를리오니스는 유럽의 추상 미술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소행성 2420도 그의 이름을 따서 2420 Čiurlionis로 명명되었다니 그 명성이 대단하다.
나는 그의 기획전에서 설치 미술 작품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리투아니아의 자연을 사랑했던 예술가, 그 숲으로 웅장한 음악이 흐르고...
(사진 촬영 금지였으나, 그냥 멍하니 서서 셔터를 한번 누르고 말았다.)
설치 미술이 주는 감동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끼을 받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히터가 빵빵히 나오는 미술관 한켠에서 준비해 간 빵을 먹고, 미숫가루를 마시며
밖의 심상치 않은 바람 속을 뚫고 겐트 시내에 가볼 것인지 고민했다.
그래, 왔으니 가봐야지... 언제 또 와보겠나...
전차 티켓 자판기는 왜 2유로를 넣었는데 70센트를 거슬러주지 않는가?
1번 전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아, 겐트 시내는 역시 멋진 곳이다.
그런데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게 너무 정신 산만하도록 복잡한 도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차에, 자동차에, 자전거에, 사람에, 크리스마스 장식에, 각종 좌판에...
미술관에서 봤던 조각품 '무릎꿇은 소년들'과 동일함...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을 피해 성당에 들어가서 잠시 쉰 후
기차 시간에 맞춰 나왔다. 중세 올드함의 겐트를 떠난다.
정말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브뤼셀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을 때, 그리고 독일로 넘어오는 동안 계속
엄청난 비가 내렸고... 나는 밤을 새고 겐트 미술관에 갔던지라 기차에서 마다 골아 떨어지고...
겐트-세인트-피터스 역 (겐트 중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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