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좋은 기억

존재의 확신

스콜라란 2012. 8. 28. 12:18

 

   어느날 밤길을 걸어 지척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던 중, 육중한 두 허벅지를 가뿐히 올려서 뛸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2주 전인가... "저 꿈틀대며 덩쿨 속으로 도망가는 것은 뭔겨?"

 

   처음에 독일 밤길에서 무서운 것은 얼굴 곳곳에 피어싱을 많이 뚫고, 검은색 옷을 넝마처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독일사람들이 잘 생기고,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기때문에 조금은 딱딱하고 험악하게(?) 생긴 편들입니다. 고트족이라는 부류도 우리나라에는 없는지라 작년에는 이런 사람들이 반대편에서 나타나면 좀 무서웠습니다. 역 근처에 가면 구걸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 또한 꺼림직합니다.

   그리고는 밤에 또 무서운 것이 개였습니다. 선선해진 밤에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어두운데서 불쑥 나타나면, 더러는 저를 보고 오히려 겁에 질려 짖어대는 모습에 제가 더 놀랍니다. 독일의 개가 사람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은 이제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좋아서인지 집에서만 기르는 한국 개들의 앙칼지고, 막무가내로 짖어대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곳 개들은 천지가 지들 세상인 것 처럼 살아요.

 

   공원에 인접한 주택가에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밤길에 저를 놀라게 하는 것이 토끼였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인기척이 사라지면 잔디밭에 정말 많은 토끼들이 나옵니다. 그 모습을 좀 담아보려고 했으나, 어찌나들 귀가 밝은지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이런 토끼들이 길가를 가끔 뛰어다니다가 슈퍼마켓에 가는 저를 보면 우리는 또 같이 놀랍니다. 토끼는 냉큼 어딘가로 숨고, 저는 잠시 움찔했던 가슴 쓸어내립니다. 독일은 가로등도 밝지가 않기 때문에 동물들에게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고양이들 때문에 놀라곤 했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고양이가 드뭅니다. 어제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갔다가 우두커니 앉아있는 고양이를 본 것이 오랜만이었습니다. 쓰레기통은 절대 열려있지 않은 구조여서 고양이들이 먹이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저는 오히려 옆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두렵습니다. 본 적도 없는 존재이지만 기르고 있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거든요. ㅋ

 

   그렇다면 2주 전에 마주친 그, 가시를 왕창 내밀고 뒤뚱대며 사라진 존재는 무엇일까요? 그도 저로 인해서 놀라 도망간 것이 분명했습니다.

   고슴도치인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저는 이날까지 살아있는 고슴도치를 본 적이 없습니다. 놀란 순간이었지만 갈색 몸뚱아리에서 나온 가시가 얼마나 기억에 남던지... 후덜덜~~~

 

   "고슴도치가 맞던가?"라는 생각을 그 다음 날부터 계속 하게 되었고, 이제는 밤에 나무가 있는 골목길의 좌우 인도로는 걷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1차로 길 한가운데로 걸어다닙니다. 으슥한 밤에 또 마주칠까봐 무섭거든요...

 

   그리고!!! 어제 낮, 집을 코앞에 둔 지름길 골목에서 엄청난 그림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저 외에도 목격자가 또 있었던가 봅니다. 제가 본 것이 고슴도치가 맞음에 99%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으~~~ 빨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으슥한 구석을 찾아 뒤뚱대던 덩어리의 존재를 또 보는 날이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토끼나 고슴도치의 존재가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동물들과의 조우를 한국의 사람 사는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으니까요.

 

 

 

 

 

   제가 사는 주택가는 아이들 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엄마를 내팽겨치고 악을 쓰며 울어도, 소리를 질러도, 노래를 불러도, 아이들의 소리가 참 듣기 좋습니다. 그리고 꼬마들이 남기는 낙서가 왜이리 예쁜지 모르겠습니다. (명작이 있는데 사진을 못찾겠습니다.) 조금은 삭막하다싶은 독일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네요...

 

 

 

*60% 정도의 마음을 담는 일기 비슷한, 편히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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