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뭔가를 바꾼다는 것이 드문 일이라서 아스팔트를 새로 덮거나, 보도블럭을 뒤엎어서 다시 새것으로 교체하는 일은 없습니다. 한국에서 어릴 때 보던 회색 정사각형의 보도블럭이 여기에는 그대로 있습니다. 도시 자체도 오랜 옛날의 흔적을 그래도 보전하기 때문에 새롭게 조성된 도시를 제외하고는 반듯히 바둑판 모양으로 뻗은 도로는 거의 없습니다. 반듯한 것 같지만 은근히 구불 구불거리며 차들이 다닙니다. 제가 집에서 시내에 나가는 길도 쭉 뻗은 듯하지만 실제로 전차를 타면 흔들 흔들... 도로 위로 다니는 전차를 스트라쎈반 또는 트램이라고 하는데 이 전차길을 차도와 같이 쓰기 때문에 전차 또한 신호등을 받으며 운전하고, 90도로 핸들을 꺽는 것도 가능합니다. 저의 대중교통 이용 중에는 전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95%이고, 어쩌다 한번 버스를 탑니다.
도로 가에는 주차된 차들이 무지 많습니다. 걸어가는 사람들, 주차된 차, 자전거 길, 일반 자동차들, 전차가 모두 동시에 움직이고, 붉은색 신호등에서는 멈춥니다. 유럽에서는 무단횡단도 많습니다. 옛날 도로를 넓히지 않고, 좁은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저에게도 무단횡단은 좀 일상이 되었습니다. 차가 없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냥 도로를 가로질러 갑니다. 유럽의 구시가지가 대체로 이래요...
이런 약간의 무질서로 인해서 가끔 조마조마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전차에서 보면 앞서가던 승용차가 급정거를 해서 큰 전차까지 급정거를 하거나, 녹색 신호등에서 육중한 전차가 출발이 좀 더디면 뒤에서 차들이 빵빵 거리고, 급히 차를 타려고 뛰어온 사람들이 택시 잡듯이 전차의 문을 쾅쾅 두드리고... 저는 처음에 이 도로의 상황을 봤을 때 주행 중인 전차가 주차된 승용차들을 칠 것 같아서 조마조마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이런 사고를 두 번 경험했습니다. 한번은 시내에서 전차를 타고 다음 정거장에 들어설 즈음에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전차가 급정거를 했습니다. 저는 앉아있었지만 서있는 사람들 중에는 많이들 내부 기둥 등에 부딛쳤답니다. 그리고는 앞에서 전차운전사가 내렸습니다. 승객들도 주차된 차와 전차가 부딛힌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두 한숨 작렬. ㅎㅎ 문이라도 열어주면 덜 답답할텐데 순종적인 사람들은 전차에서 모두 운전사의 안내멘트만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10분을 끌더니 운전사가 안내방송과 함께 문을 열어주었고, 저도 당연히 내렸습니다. 자동차가 주차를 너무 앞으로 해서 차 범퍼가 전차의 옆을 싸~악 긁었습니다. 어디선가 전차 관계자가 출동했고,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다음 정거장으로 사람들의 무리와 함께 걸었습니다. 모두들 도로를 무단으로 점령한 채 씩씩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란... 날씨도 추워서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중에 '오늘 재수가 없군'의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영하 15도의 날씨에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전광판에는 '즉시도착'이라고 써있었고, 이전 정거장에 있는 전차가 보였습니다. 멀리서 전차가 움직이는 듯하더니 그대로 멈췄고, 10분 정도를 그냥 서서 기다리니 전광판의 안내멘트가 흐릅니다. 승용차와의 사고로 인해서 어쪄구 저쩌구... 더 기다리니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막 걸어오는 것입니다. ㅋㅋ 혼자 웃었습니다. '사고난 후 이제야 문을 열어줬군...' 그래도 너무 추워서 계속 버티고 서있는데 걸어오던 어느 아주머니가 저에게 그냥 걸어가라고 말합니다. 제가 차와 추돌했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주차된 차와 부딪힌 것이라는 상황 설명이 이어집니다. 몸도 안좋은 저, 그리고 정거장에서 같이 기다리고 있던 다리 깁스한 사람은 결국 걷기 시작했습니다. 으~ 하필이면 이렇게 춥고, 몸도 안좋을 때에!!
현대적인 독일의 도시에는 서울의 지하철과 같은 전철이 있습니다만, 저는 아직까지는 오래된 도로를 달리는 전차를 타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그 안에서 바라보는 유럽의 바깥 풍경도 재미있고, 사람들의 모습도 관찰하며 잘 타고 다닙니다. 전차 안에서 흔들 흔들하다가 꺽어질 때 느릿해지는 속도, 붉은 신호등에서 멈춰서고, 앞에 사람이 있으면 빵빵거리고, 딱 두 칸의 기차만 연결해서 다니므로 사람 많다고 다른 칸으로 이동도 못합니다. 서울의 깊고 깊은 지하를 달리는 전철과는 완전 맛이 다른 대중교통입니다. 유럽여행을 오면 오래된 도시에서 전차를 타고 시내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차 시간이 긴 시내에서는 이 사이로 길을 건너는 별난 인간도 있습니다.
오래된 전차도 여전히 많이 다니지만 사진의 모습은 비교적 신형입니다.
|
'$ 유럽, 좋은 기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침한 가로등 (0) | 2012.02.22 |
---|---|
쾰른 (로젠몬탁) 카니발 행렬 (0) | 2012.02.21 |
존경스럽다, 독일의 도덕성 (0) | 2012.02.17 |
독일 카니발 시작, 쌩~난리!! (0) | 2012.02.17 |
독일 감기약 (0) | 2012.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