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좋은 기억

집 구하기 프로젝트

스콜라란 2011. 8. 13. 06:28

 

   집을 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매우 힘들고 심리적인 위축감을 가져다주는 일일 것입니다. 부모가 집을 마련해줬거나 도와주지 않은 경우에는 이 '집구하기'가 세상을 뼈저리게 배우는 매우 중요한 숙제 또는 '어른용 성장통'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어른이 되어 독립한다는 것... ㅎㅎ 그냥 웃고 넘기렵니다.

 

   제가 이곳에서 집을 구하러 다닌지 2개월 반이 지났고, 일단 계약을 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한국유학생 및 거주자들, 이사가려는 도시의 부동산 2곳, 독일의 전국구 부동산 거래 사이트... 이렇게 3가지로 모두 공략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유학생들의 집에 물려서 들어가는 것은 중간에 제외하게 되었습니다. 신속하게 집을 빼야하는 사정들이 있다보니 별로 좋지도 않은 집을 좋게만 말하는 경향들이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몇 집 중에 직접 보러갔을 때 마음에 드는 곳이 있었는데 집을 내놓은 사람과 중개인(der Markler,  마클러) 간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탓에 성사되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중개인이 저에게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쳇! 다른 부동산 중개인이 보여준 어느 집도 가격대비 공간도 넣고, 좋았는데 애매한 위치로 인해서 대중교통의 이용이 불편하고, 집 주변에 슈퍼마켓이 없다는 단점으로 접었더랬지요. 저렴한 집도, 조금 비싼 집도 역시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결국은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를 통해 약 100통의 이메일을 보내고, 서로 연락을 주고 받고, 연락이 오면 가끔 보러가고, 사기꾼도 하나 있길래 이메일로 다시 비웃어주고 등의 과정을 거쳐서 겨우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당황스럽게 하는 독일 부동산의 시스템은 대충 이렇습니다.

   (1) 그때 그때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주는 중개인도 있었지만 아닌 경우도 있었습니다. 집을 보여주는 날짜(시간)와 집주소를 알려주길래 찾아가보면 '경쟁자'들이 있습니다. 저처럼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지요. 어떤 집에서는 5팀을 본 적도 있었습니다.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급한 마음에 괜히 마음에 들어지는^^ 이 심정을 누가 알까요? 집을 본 다음에 마음에 들면 중개인에게 다시 연락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2) 집에 부엌의 싱크대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접 짜넣어야 하는 상황이지요. 어느 집에서는 이전 세입자가 자기가 세팅한 싱크대를 살거냐는 의향을 묻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집은 모든 가구가 구비되어 있는 곳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싫어합니다. 주인 취향도 싫고, 다 꺼져가는 매트리스도 싫고(지금 집이 그래요), 가구 위치 변경도 안되고 등등이죠. 

   (3) 우리나라는 집을 보고, 마음에 들면 바로 부동산 사무실에 가서 먼저 계약하는 사람이 임자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는 생각할 시간을 줍니다. 아... 답답하데요. 이번에 구한 집도 7월 말에 보고는(다른 경쟁자도 있었음) 헤어지면서 마음에 든다고 하자 2주일간 생각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혼자 급해서 바로 다음 월요일날 계약하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냈습니다(핸폰없이 살렵니당). 연락이 없더군요. 1주일 후에 다시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2~3번 더 이메일이 오고간 후 '세입자(der Mieter, 미터)'가 되는 것을 축하한다는 메일이 왔지요.

   (4) 세입자의 재정 상태를 꼼꼼히 확인합니다. 세입자에게 돈이 나오는 구석이 있는지를 요구하고, 세입자는 이를 서류로 증명해야 합니다. 독일 애들은 최근의 월급 명세서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경우는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는 설명을 했고(객관적으론 실업자), 그래도 나의 재정 상태을 믿지 못하겠다면 월세를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나 한국이나 좀 있어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이 집을 계약하는 과정에 좋은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너무 상세한 에피소드는 생략!

   (5) 독일에서 전세란 없지요. 자기 집을 갖지 않는 이상은 모두 우리식의 월세입니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보증금(die Kaution, 카우치온)을 받긴 합니다. 보증금은 주인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정해져있는데요, 순수 월세(공과금 제외)의 3배를 주는 것입니다. 월세가 우리 돈 50만원이라면 150만원을 계약할 때 줍니다. 떠날 때 집에 문제가 없으면 모두 돌려받고, 페인트 칠을 해야하는 등의 하자가 발생하면 그 비용을 제하고 받습니다. 지금의 집에서 나갈 때 어찌하는지 봐야겠네요. 중개수수료(die Provision, 프로비지온)는 우리보다 훨씬 비쌉니다. 이것도 월세의 2~3배를 줘야합니다. 저의 경우는 복비가 없는(frei) 상황이라서 돈 굳었습니다.

   (6) 꼭 부동산 사무실에서 계약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류만 서로 완벽하게 팩스 등으로 주고 받으면 계약이 성사됩니다. 중개인들이 요구하는 것은 재정 상태, 여권(비자) 등이지요. 그리고 계약 날짜에 열쇠를 받아서 바로 들어가면 된답니다. 저의 경우는 직접 만나서 계약서를 쓰긴 했습니다. 계약서는 참 두툼합니다. 이번에는 12~3장의 A4용지 서류를 받았습니다. 집에 대한 사항들, 법률적인 내용들이 전부입니다. 집에 대한 부분은 꼭 자세히 확인을 해야합니다. 저의 경우는 제 입장에서 궁금한 또는 확인할 내용을 6~7가지로 적어가서 앞에 놓고 질문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 들어갈 때 집은 청소가 되어있나요? 제가 해야하나요?' 그랬더니 지금의 세입자가 나가면 자기가 집에 가서 청소해 놓는다고 안심시켜줬습니다. 또 다른 예로 '1년이 지나면 월세를 올리나요?' 답은 아니요였습니다. 사는 동안에는 인상이 없다는 얘기죠. 마지막으로 다음에 제가 집을 뺄 때는 3개월 전에 말해줘야 한답니다.

 

 

 

 

   계약하러 가던 날... 베토벤의 도시인 본(Bonn) 시내에서 베토벤 동상을 뒤통수에 두고 우선 배불리 빵을 씹어먹었습니다. 참 힘들게 계약하러 가긴 하는데, 여기가 외국이다보니 설마 사기당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고, 기분이 약간 이상했지요. 마침 광장에서 거리 음악가들이 영화음악 주제곡인 '나자리노'를 연주하였습니다. 그 음악을 듣다가 정신이 확~들어 급히 역으로 갔습니다.

   '나자리노는 저렇게 빠르게 연주하면 안돼. 좀 서글프고 느리게 하는 것도 좋지...'

 

 노란 건물(우체국) 앞이 베토벤 동상

 

 

   가을에 이사갈 집을 구할 때 공부 많이 했습니다. 왜 그 도시에서 그 지역을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지도 알게 되었구요. 집중 공략한 탓에 저도 그쪽으로 안착하기 전입니다. 이사갈 집의 동네는 푸릅니다. 독일 전역의 어느 동네나 다 이렇긴 하지만, 이 동네도 길목마다 가로수가 매우 크고, 푸르렀습니다.

 

 

 

   이사가는 집의 바로 옆에는 베토벤 공원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도시를 떠나려 했더니 베토벤 공원 옆으로 가게 되는군요. 이런 우연은 뭘까요?

 

공원 입구에서 급히 찍었는데 나무가 커서 안쪽의 모습은 안보이네요. 

 

공원에 접해 있는 비어가르텐(Bier Garten). 가끔 여기서 멍 때리겠죠?

 

공원과 이사가는 집 사이, 이런 곳은 무단주차가 허용되나봅니다.

 

 

   우리식의 아파트 단지가 있는지 몰랐는데 독일도 있었네요. 사실은 자전거를 계획하고 계속 조용한 1층 집(독일식의 지층)을 공략했었는데, 잘 안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 지은 곳이라는데 외관도 깨끗하고, 4각형으로 둘러진 집들 안에 긴 연못이 있었습니다. 건물 지하에 개인 창고(굿~!)가 있고, 자전거 보관실(굿!), 세탁실 및 건조실도 있습니다.

 

 

원룸이라 말하기 애매한 투룸

 

 

   이곳으로 결정하게 된 중요했던 요인 중의 하나는 전철역입니다. 집에서 직선거리 50m에 있는 정류장인데 여기가 이 노선의 종점이더라구요. 다른 역들과는 달리 매우 조용합니다. 철로가 끝날 뿐이어서 여기까지 왔다가 잠시 쉬고는 반대로 출발합니다. 노선은 이 도시의 대표 대학을 지나면서 바로 시내로 들어가주는 센스! 그리고 역 옆에 슈퍼마켓이 있어서 밥해먹기 귀찮아하는 저의 절정 게으름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의 어느 집이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겠지요. 가을부터 살아보고 다시 판단하겠습니다. 이사 가기 전에 해야할 일은... (1) 이케아에 가서 침대 틀도 필요없이 작은 매트리스만 달랑 사고, 발바닥이 완전히 땅에 닿는 낮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옷 걸어둘 행거, 대걸레만 사기... 배달까지 예약까지 (2) 저렴한 이삿짐 가게 찾아서 계약하기 (3) 들어가는 집의 전기, 가스, 인터넷 신청하기 (4) 독일어 수준 좀 제발 올리기~~!!!  

 

   독일, 독일어가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으로서 집을 구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것만은 사실입니다. 제가 외국인이어서 집을 더 많이 못 봤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거든요. 그럴 때는 저의 경우로 가정하면서 위로했습니다. '내가 한국에 집이 있는데 세입자 후보가 한국인과 아시아 외국인이다. 누구에게 줄까요?' 뭐, 이런거죠...

   설마 이번 계약이 사기는 아니겠지요? 만일 그렇다면... 간단하게 생각하렵니다. 보증금 떼이고, 급한데로 다시 아무(!) 집이나 구해서 짐 쟁여놓고, 경찰서에 가서 그간의 모든 메일 자료와 계약서 등을 보여주며 신고한다! 

   으~ 집 구하기 스트레스가 끝났으니 당분간은 다 잊고, 단순하게 살겠습니다.

 

 

*70% 정도의 마음을 담는 일기 비슷한, 편히 쓰는 글입니다.

'$ 유럽, 좋은 기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듯하게 생긴 이 남자  (0) 2011.08.22
물이 문제군!  (0) 2011.08.19
골프연습장  (0) 2011.08.10
공사의 계절  (0) 2011.08.07
서늘한 여름, 닭먹기  (0) 201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