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다른 도시에 집을 보러 갔습니다. 부동산과의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요. 집을 보러가면 그 동네 전체를 걸어다니며 주변을 확인해보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기로 한 주택가의 집 앞에서 조금 서성이다가 옆으로 조금 걸으니 특이하지도 않은 놀이터가 있더군요. 그러다가 놀이터 펜스에 기대어 혼자서 행복하게 웃었습니다. 돌로 만든 탁구대가 있었거든요. 네트는 얼마나 튼튼한지 쇠로 만들었습니다.
탁구대를 보면 저는 항상 10살 때로 돌아갑니다. 어릴 때 집에 탁구대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마당에 펴놓고, 탁구를 쳤지요. 같이 칠 사람이 없을 때는 한쪽 면을 세워서 벽치기를 했더랬습니다. 이런 행복한 인연으로 국민학교 3학년때 탁구부가 되어 운동선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3학년과 4학년 동안 정말 열심히, 재밌게 운동을 했습니다. 제가 제 또래의 남자아이들보다 더 기술이 좋아서 좀 문제도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이 차례로 줄을 서서 제가 치는 공을 받아내는 연습이 많아졌습니다. 이로 인해서 어떤(?) 갈등이 싹텄습니다. 뭘 잘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다니며 혼자 공부를 하다보니 이런 경험이 빈번해지면 주로 여자에게 독특한 심리적 특성이 하나 생기더군요. '성공에의 두려움'... 어지간히 심리학 공부하다보면 다 알만한 내용입니다. 탁구부에서 약간의 홍역을 치를 즈음에 학교의 탁구부가 해체되어, 큰 대회같은 곳에는 나가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즐거웠던 생활이 끝났습니다.
독일의 생활체육이 매우 발달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반 슈퍼에서도 그럭저럭 쓸만한 탁구라켓과 공을 팔고 있습니다. 그거 사서 놀이삼아 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놀이터에서 본 돌탁구대는 아이들을 고려해서인지 높이는 낮았습니다. 놀이터 자체는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의 번드러진 전시/박제용 놀이터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놀이터도, 돌 탁구대도 이 동네에 촥~ 녹아들어있는 한 부분 같았습니다.
놀이터라는 것이 고급스러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1) 뛸 공간, 그리고 (2) 흙(모래)... 이 두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놀이터마저 추억으로 또는 아파트 건축허가를 위한 생색내기 공간이 되어가는 현실, 도시를 가꾼답시고 있는 나무마저 뽑아버린 후 아스팔트로 도배를 하는 우리나라가 조금은 졸부스럽네요. 또한 놀이터는 부모들에게도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아를 밀착경호하며 보살펴야하는 엄마 또는 아빠들이 애들을 놀이터에 풀어놓는 순간 잠시나마 여유가 생기거든요. 물론 우리의 엄마들도 여유 있어요! 학원을 코스로 끊어서 애들을 돌리죠. 한때 모래가 애들한데 좋다고 뉴스에서 떠들어줬더니 아파트 베란다에 모래 갖다놓은 집들도 있었습니다. 좋은 것이라면 다 해주는 엄마를 가진 애들이 너무 많아요. 애들이 요구하기도 전에 알아서 다 가져다주는 부모들. 놀이터 모래는 베란다의 모래와 차원이 다를지언정...
애도 없는 제가 가끔은 남의 귀한 자식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답니다. 아이들에게 자유가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지난 4월에 찍어둔 제가 졸업한 국민학교 사진 하나 올립니다. 하루 시간을 내어 제가 자란 곳에 가서 어릴 때의 시간들을 정리했었죠. 어릴적 기억의 동선을 따라가다보니 자연스레 국민학교 교문을 들어섰답니다. 그리고는 놀랐죠. "삭막하구나..."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어서 그런가요? 앞의 모래를 제외하면 모두 아스팔트로 덮혀있었습니다. (1) 먼지 안나는 운동장, (2) 차가 다니기 좋은 포장길, (3) 왜 박혀있는지 모르겠는 놀이터 기구 몇. (저거 내가 학교다닐 때도 있었던 미끄럼틀 같은데... ^^ 역시 학교란 놈의 곳은 답!답!)
*70% 정도의 마음을 담는 일기 비슷한, 편히 쓰는 글입니다. |
'$ 유럽, 좋은 기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사의 계절 (0) | 2011.08.07 |
---|---|
서늘한 여름, 닭먹기 (0) | 2011.07.20 |
노트 속 '그' 헤름홀츠(Helmholtz) (0) | 2011.07.10 |
독일 행정, 참 느리지만 정확하긴 하다. (0) | 2011.06.20 |
독일어에서의 길 (0) | 2011.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