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취미가 그러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딱히 할말은 없지만 나의 취미 중 하나는 노트정리입니다. 지금은 많이 많이 소원해졌지만 한때는 정말 열심히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내 손에 내 소유의 '나의 컴퓨터(PC)'가 들어왔던 20대 중후반부터는 워드프로세서가 노트가 되었고, 거창하게 말하면 공부한 것과 읽은 것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 노트 때문에 동문수학했던 인간들의 미움을 받은 적도 더러 있는데 좋은 정보는 자기 혼자만 가지고 있다는 억울한 누명을 썼더랬습니다. 대학원 시절은 참... 짜증나는 기억이 많지요.
어제는 저녁 8시 경에 우두커니 걷다가 무심결에 작은 간판(?)을 봤습니다. 게을러서 일주일에 서너번만 가는 도서관 옆에 베토벤-김나지움(인문계 중고등학교)이 있는데 그 입구에 있는 검은색 돌에 새겨진 어떤 이름을 흘낏했지요.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도 헤름홀츠(Helmholtz)를 한 명 알고 있는데...'
카메라가 손에 있었던지라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와서 유심히 읽어봤지요. 아! 내가 알던 그 헤름홀츠가 아닌가요?! 그리고는 집에 와서 약 14~5년 전에 만들어두었던 신경생리(개론적인 내용) 쪽의 노트를 찾아봤습니다. 외장 하드를 뒤져봤더니 흔적이 딱 2줄로 남아있었습니다.
1850년 독일 헤름홀츠(Helmholtz), 개구리를 눕혀놓고 근육에 전기 자극. 긴 근육의 한 끝에 자극을 주고, 다른 끝에 자극이 도달하는 시간을 측정. 개구리 근육의 전기전달속도가 초당 약 100m임을 밝혔음.
별것 아닐 것 같은 개구리 연구지만 이런 연구를 토대로 인간 신경의 전기전달 속도를 찾게 되고, 인지심리학(및 체육학의 세부분야)과 같은 분야에서는 이런 주제도 공부합니다. 신경이 소리 또는 빛과 같은 자극을 받은 후 그 자극에 대해서 반응을 일으킬 때까지의 시간을 반응시간(reaction time, RT)이라고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반응시간은 자극된 신경이 빠르게 전기신호를 보내서 동작을 만들어낼 근육을 수축시킬 때까지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막상 수업에서 이런 얘기 시작하면 애들이 도통 듣지를 않고, 졸음의 입구에 서있었지요.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들이 많아서인가요?) 스포츠에서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100m 달리기의 스타트입니다. 선수들이 스타팅을 빠르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는지 모릅니다. 수영, 스케이팅의 단거리 종목도 그렇구요. 천분의 1초를 다투는 종목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지요. 또한 버스나 지하철에서 갑자기 불이 나면 누가 가장 먼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지는 반응시간이 크게 좌우한답니다. 긴박한 사건 중의 반응시간은 그러므로 아무도 예상 못하죠. 실제로 제가 여행갔을 때 불난 버스에서 친구 두고 먼저 뛰쳐내렸다가 싸우는 경우도 봤습니다. ㅎㅎ
작게 촘촘히 새겨넣은 글을 요약해보면 (매우 짧은 독일업니다.) ... - 오늘날 베토벤 김나지움이 있는 이 땅 위에 자연연구자인 헤르만 폰 헤름홀츠가 본(Bonn)에 살았을 당시의 집터가 있었습니다(당시에는 코블렌츠 주소였음). - 학자였던 헤름홀츠는 1855년부터 1858년까지 본 대학에서 해부학과 생리학 교수로 재직했었습니다. - 1895년부터 본(Bonn) 과학협회 안에 그의 이름을 기리는 “헤르만 폰 헤름홀츠 - 독일연구협회”가 세워졌습니다.
2010년 12월 말에 찍어두었던 본(Bonn) 대학 인근의 베토벤-김나지움
좋은 연구를 하여 인류의 삶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고,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일은 역시 가치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생리학, 해부학과는 상관없는 공부를 했던 저 조차도 '그' 헤름홀츠'를 기억하고 이렇게 다시 노트를 뒤적여보게 되잖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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