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추상적인 길이 있습니다. 인생의 길, 죽음의 길, 삶의 길, 투쟁의 길, 살 길, 용서의 길... 물리적인 길도 참 많지요. 산길, 바닷길, 숲길, 오솔길, 들길, 해안길... 사람아닌 것들이 다니는 길도 많구요. 찻길, 뱃길, 기찻길, 쥐가 잘 다녀서 내가 피해다녔던 길, 개미가 잘 다니는 길, 비온 후 달팽이가 나타나던 길... 감성을 자아내는 길도 있지요. 논두렁길, 꽃길, 아지트로 가던 골목길, 골목 많던 동네에서 살던 때의 지름길, 아스팔트로 안덮혔던 어린 시절의 집앞 길에서는 비가 온 후에 항상 물길을 만들어서 손이 부르트도록 놀았지요. 이 길을 아스팔트로 깔아주겠다고 약속하던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매번 속았던 무지한 어른들... 아스팔트가 집값을 좌우할 때였으니까요.
조용히 걷다보면 참 따뜻한 느낌이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낮에 배꼽시계를 달고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 작은 도시의 조용한 길을 걷다가 독일의 길은 독일어로 몇 가지나 분류되어 있는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요즘은 단어 외우는게 주 공부꺼리이다보니 이렇네요. 위에서 나열한 저런 길들 말구요, 하루 중 걷게 되는 그런 길이요! 위의 길들은 시적인 어감이 강해서 제가 독일어로 표현 못합니다. 큭. 사전적 의미를 파악하고, 실제로 길의 표지판을 열심히 관찰한 결과 4개의 길이 있습니다.
(1) 차가 다니는 큰 대로를 일컫는 '알리' (2) '알리'보다 작은 도로인 '스트라쎄' (3) 사람들이 주로 다니지만 차도 다닐 수 있는 크기의 '가쎄' (4) 이 보다 더 작은 '벡'.
절대적 크기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고, 상대적인 비교에 의해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죠. 작은 도시의 '알리'는 큰 도시의 '스트라쎄'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정표 사진과 실제 길 사진의 장소는 다릅니다.)
큰 대로를 말하는 알리(die Allee, -n)의 사전적 의미는 양편으로 나무가 심어져 있는, 그러니까 가로수가 있는 넓은 길을 말합니다. 꼭 모두 가로수가 있기는 할까만은 역시 나무가 많은 나라이다보니 지금까지 '알리' 이정표를 본 곳은 모두 비교적(?) 대로이긴 했습니다. 앞에 도로이름을 쓰고 뒤에 대로 '알리'를 바로 붙였네요. 쾨닉스알리...
대로 보다는 작은 길인 스트라쎄(die Straβe, -n)는 바퀴달린 것들이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입니다. 영어의 스트릿에 해당하는 단어죠. 영어와 독어의 어원은 같기 때문에 스펠링이 유사하고 의미도 같은 단어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 동일한 어원으로 인해서 저는 영어도, 독일어도 못하는 것이지요.
나무가 많아서 멋진 길입니다.
가쎄(die Gasse, -n)는 많은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좁은 스트라쎄인데요, 양편에 집들이 늘어서 있는 길이라는 뜻도 있네요. 사람 위주지만 필요에 따라서 차도 다닐 수 있지요. 아래 사진은 본(Bonn) 시내에 있는 '본가쎄'입니다. 이 길에 베토벤의 생가와 작은 박물관이 있지요. 생가가 너무 평범에서 몇 번을 그냥 지나친 후에야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의 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왼쪽편 중간 쯤이 베토벤 생가입니다.
가장 작은 길인 벡(der Weg, -e)은 대체로 아스팔트가 깔려있지 않으며,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랍니다. 보도블럭이나 그냥 흙길이지요. "이 길, 저 길" 할 때 그냥 '벡'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네 집으로 들어가는 개인(Privat) 길(Weg)이랍니다.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해서 살아야할지를 상념하게 되는 목요일 밤입니다. 조용한 길, 착한 길, 바른 길, 공부하는 길... 이런 수식어만큼이나 될런지요? 설마, 백수로 직행하는 노는 길로 가는 것은 아니겠지요? 매일 오전, 늦잠으로 인해서 전철타러 가는 길을 뛰지나 말기를 희망합니다. ^^
*70% 정도의 마음을 담는 일기 비슷한, 편히 쓰는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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