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인 남서울미술관은
사당역의 유흥가 안쪽으로 진입을 해야 한다.
남현동 제1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미술관 건물의 뒤가 보인다.
우리은행 건물을 끼고 돌아 대로에서 보이는 서양식 건물이
2004년부터 서울미술관 남서울분관이 되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5년에 건축된 이 서양식 근대건물은
중구 회현동에 있었던 벨기에영사관이었고,
한국은행, 신세계백화점에 인접하여 함께 있었다.
격동의 시기에 고종은 우리나라를 중립국으로 선언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그 위치를 상실하였다.
중립국으로 가는 길에 동반자로 삼은 나라가 벨기에였고,
그래서 벨기에영사관이 서울의 중심인 중구 회현동에 자리잡았다.
이 대목에서 정신을 차려야 하는 점이 있다.
우리가 벨기에와 손을 잡았다고 해서
벨기에가 미화되어서는 안된다.
망해버린 조선왕조를 도와주러 온 벨기에도 아니고,
벨기에도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스웨덴 등과 같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식민지를 착취한 국가 중 하나였으며,
그 과정에서의 잔인함, 잔악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일본의 식민지인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마루타)과
관련된 책을 읽고 몇 달을 속이 메스꺼운 경험이 있다.
그 당시에 꿈자리 또한 사나와서 혼자 고생을 하였다.
아직도 그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린다.
30대 후반에 독일에서 유럽이 식민지에서 벌인 참상을
글로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중 벨기에가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인에게 행한 만행도
역시나 몇 일 동안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예를 들어 일정 수확량을 채우지 못한 사람을 불러내어
많은 노예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두 팔을 잘랐다.
그 날의 수확량을 못 채우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인데
그 대목이 유독 속이 역겨워서 더 읽을 수가 없었다.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이 얼마나 잔혹스러운가는
서로 시합을 하듯이 이루어졌다.
그 유럽 열강이 보여준 식민지 개척의 후발주자가
독일과 일본이고, 식민지 제국건설이 꺾이면서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국가이다.
아이러니하게 그래서 유럽에서는 일본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식민지를 거느린 국가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일본의 만행과 참상을 서양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식민지 시대가
부당했고, 억울했음이 아니라
군함도와 같은 인권 유린의 문제를 앞세우고,
특히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여성인권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
일본 군인(남성)의 욕구를 위해서 식민지 여성을 조직적으로
전쟁에 끌고 다니며 유린한 것과 같은
유럽에서도 사례가 없는 만행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1905년의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기 위해
고종이 네델란드 헤이그에 특사까지 파견했으나
일본의 편에서 무마시킨 나라는 영국이었다.
이런 대목에서는 영국을 생각해도 피가 끓는다...
이런 역사적 울분과는 달리
어제 토요일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도
지금 블로깅을 하는 일요일 오후도 너무 화창하다.
다시 블로깅을 이어가자면...
1905년부터 있었던 벨기에영사관은 1918년 폐쇄되었고,
이후 요코하마생명보혐(1919년)과
기생조합인 '본권번'으로 사용되었다.
1944년 일본 해군무관부로 사용되던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에는 해군군악학교, 공군본부, 해군헌병감실이
들어왔고, 1968년 구 한국상업은행의 방계기업인
대창흥업에 불하되었으나 방치되었다고 한다.
1977년 5월 12일, 일본인들에 의해 건축된 신고전주의 건축물
한국은행, 서울역 등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식민지배의 증거물이면서 중요한 근대유산이라는 이유였고,
구 벨기에영사관 건물도 사적 254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사적 지정 직전에 남현동으로의 이전이 결정되었고,
중구 회현동은 재개발사업지구가 되었다.
1979년 지금의 남현동 1059-13번지로 이전이 확정되었다.
벽돌, 석재, 나무 등이 모두 분리된 건축물은 1982년 복원되었다.
그리고 2004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SeMA) 남서울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5년 건립 111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시림미술관 근현대사 프로젝트인
[미술관이 된 구 벨기에영사관]이라는 상설전시가 정착되었다.
상설전시는 역사, 건축, 현대미술로 기획된 기존의 전시에서
역사와 건축 부분을 재구성한 것이다.
건물 입구의 오른편에 상선전시가 진행 중이고,
나머지는 모두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왼쪽의 흰색 상설전시 팜플렛은 소장할 가치가 있다.
나머지 방들을 둘러보면서
서양식 건물을 감상할 만하다.
사실 이 정도의 건물은 유럽에서 개인 주택으로도 흔하지만
우리에게는 역사와 맞물려 문화재 급으로 격상...
유럽에 있었던 몇 년 동안 서양 건물의 편안함은
계단방에 스며드는 햇살에서 가끔 느꼈었다.
동시에 유럽 생활의 답답함과
유럽인들의 인종주의도 느꼈던 곳이다.
어느 사무실을 가거나 또는 나와서
마음을 정리하느라 계단방에서 밖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있곤 했던 기억이 있다.
작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미술관이었다.
건물 안에 카페 영업을 해도 잘 될 것 같은데
어제 방문을 했을 때는 문을 안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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