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대군묘와 최영장군묘로 들어가는 샛길을 왠지 지나친 것 같았다.
우측으로 멋진 묘역이 보여서 결국은 차를 돌려 되돌아갔다.
성령대군묘 앞에는 주차할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평일이라서 사람이 없어 바로 앞에 주차를 하고 둘러보았다.
[신도비에 적힌 깨알같은 글자들을 모두 발췌하면...]
성령대군의 이름은 '종'이니 조선국 제3대 태종왕의 네째 아드님으로
양령, 효령, 충령(세종대왕) 대군의 친동생이시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시다.
대군께서는 태종5년(1405년 을유)에 탄생하시고, 일찍이 성령군에 봉해졌다가
태종14년(1414년 갑오)에 대군에 진봉되셨고,
태종17년(1417년 정유)에 창령성씨 좌찬성 억의 따님과 혼인하셨으며,
부인은 삼한국 대부인의 훔계를 받으셨다.
대군께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효제하고 호학하시어
태도가 단정하고 부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대광보국 숭록대부의 위계에 올랐으나
태종18년(1418년 무술2월)에 홍역으로 향수 14세에 서거하셨고
시호는 변한국 소경공이시다.
태종대왕께서는 이를 몹시 비통해 하시어 친히 제문을 지으시고
분묘 옆에 암자를 지어 대자암자라 하고 대군의 명복을 빌게 하였으며,
신라동이란 지명을 대자동이라 명명하시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대자암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성령대군 묘는 3단의 장대석을 쌓았으며 묘의 주위에 호석을 둘렀다.
묘소의 좌우에는 석사자, 석양이 배치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상석, 장명등 좌우에는 문인석이 있다.
신도비는 1418년 태종18년 4월에 세운 것으로 도총제 조용이 묘지를 짓고,
대제학 변계량이 신도비명을 짓고, 직 예문관 성개가 글을 썼다.
팔작지붕의 옥개석에 낮으막한 귀부를 갖추고 검은 수석의 비신을
양옆에 세운 우주석에 끼워 넣은 것이 특징이다.
비의 규모는 폭 130cm, 두께 25cm, 비석의 높이는 163cm이며 전체 높이는 300cm이다.
특히 성령대군의 묘역은 석조물이 많고 그 조성양식 또한 특이하여
조선시대의 묘제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어 준다.
묘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길이 있고, 묘 바로 앞까지 가볼 수 있다.
묘역에 오르면 쌍묘가 있는데 이 묘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아쉽다.
이 쌍묘는 자손이 없는 성령대군에게 양자로 입양되어
성령대군의 제사를 모셨던 원천군과 그의 부인 백천 조씨의 묘이다.
원천군은 성령대군의 둘째 형님인 효령대군(3대 태종의 둘째 아들,
4대 세종의 둘째 형님)의 6번째 아들이다.
이 페이지 밑에 조선왕조 1대 태조고황제부터 4대 세종까지의 계보도를
사진으로 올렸는데... 왜 이렇게 부인들이 많은지 놀랐다.
3대 태종의 경우는 20명의 여인들에게서 29명의 자식이 있었다(아들 12명, 딸이 17명).
원천군과 부인 백천 조씨의 쌍묘 위에 성령대군의 묘가 자리한다.
묘역 사이로 자유롭게 걸어다녀도 된다.
성령대군의 묘 뒤(대자산) 너머에 고려 최영장군의 묘가 있고,
성령대군의 묘 앞에서 아래 쌍묘와 함께 대자동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아래 계보도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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