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서삼릉은 효릉, 희릉, 예릉의 3개 능을 말하는데
이 중 효릉은 농협 부지 안에 포함되어 비공개로 되어있다.
그래도 국가 사적이기에 공개를 하면 좋을텐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비공개 능인 효릉은 조선 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으로
중종의 맏아들이었던 인종(1515-1545)은 조선의 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왕이다.
1544년 왕위에 오른 후 중종의 상을 치르면서 몸이 약해져
9개월 만에 31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인성왕후(1514-1577)는 중종 19년인 1524년에 세자빈이 되었고,
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로 책봉되었다.
인종과 인성왕후에게는 소생이 없었기에 이복동생인 명종에게 왕위가 넘어갔다.
희릉은 인종의 생모인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장경왕후(1491-1515)는 조선 11대 왕인 중종의 제1계비였고,
중종의 정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된 후 1507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515년에 세자인 인종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경복궁 별전에서 승하하였다.
희릉은 헌릉(태종의 능) 서쪽 언덕에 있었는데 1537년(중종 32)에 이곳으로 천장되었다.
희릉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향로(또는 신로)가 능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예릉은 조선 25대 왕이며, 이후 황제로 추존된 철종장황제와 철인장황후 김씨의 쌍릉이다.
철종(1831-1863)은 장조(사도세자)의 증손자이며,
조선 24대 왕인 헌종 대에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집안이 모두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1849년 헌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순조(23대 왕, 순조숙황제)의 왕비 순원왕후(순원숙황후)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철종은 대한제국 시절인 1908년(융희 2)에 황제(철종장황제)로 추존되었다.
철인왕후(1837-1878)는 1851년(철종 2)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1858년(철종 9)에 원자를 낳았다. 1908년에 황후(철인장황후)로 추존되었다.
1864년(고종 1)에 철종을 안장하면서 예릉이 조성되었고,
1878년(고종 15) 철인왕후를 안장하면서 쌍릉으로 조성하였다.
예릉은 조선왕릉의 형식으로 조성한 마지막 왕릉이기에 더 열심히 둘러보았다.
예릉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향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어로(왕의 길)가 만들어진 것이다.
1908년 황제로 추존된 후 어로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이다.
의령원과 효창원은 서삼릉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곳인데
왕이 되지 못한 왕의 자손이기에 '능'이라고 하지 않고, '원'이라고 부른다.
앞의 원이 효창원(문효세자)이고, 뒤가 의령원(의소세손)이다.
말과 소 농장에 둘러싸인 서삼릉은
다른 능에 비해서 관리나, 풍광이 썩 뛰어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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