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적(왕릉·원·묘)

서울| 조선 의릉(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사적 204호)

스콜라란 2018. 3. 9. 23:15



석관동의 의릉을 찾아가는 길이 편리하지는 않았다.

마주오는 차를 비켜가며 골목을 한참 지나서야 의릉이 한 눈에 보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는 의릉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갈라져 있고,

의릉 뒤로 경희대학교 건물도 보였다.









차로 의릉 입구까지 진입하기가 번거로운 것에 비하여

의릉 자체는 매우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의릉 위의 야트막한 천장산 둘레길을 걷는데 약 1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맏아들인 경종(1688~1724, 재위 1720~1724)은

학문에 힘쓰는 것을 중시했던 숙종 아래에서 4살에 천자문을 익혔고,

8살 때에는 성균관 입학례를 치루면서 영특함을 칭찬받았다.


그러나 경종이 14살 되던 해에 생모인 장희빈에 의해서 일생의 충격을 받게 된다.

1701년 10월에 대신들의 상소가 계속되자 숙종은 자신의 거처에 사당을 짓고,

인현왕후를 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세자의 생모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렸다.


이 사건에 대한 하나의 설이 전해지는데

사약을 받기 전 장희빈은 숙종에서 마지막 애원으로 아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이에 숙종이 허락하여 세자를 장희빈에게 데려갔을 때

장희빈이 세자에게 달려들어 세자의 하초를 움켜쥐고 잡아당겼다고 한다.

환관들이 세자를 떼어냈으나 이때 세자는 기절을 하였다.


1720년 숙종이 승하하자 경종은 33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위 일설이 장희빈의 간악함을 묘사하기 위한 호사가들의 소설일 수도 있으나,

경종은 짧은 생애 동안 병환에 시달렸고, 후사를 보지 못하였다.

즉위한 지 두 달만에 이복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삼은 후 국정을 맡겼다.

(*왕세제: 왕위를 물려받을 임금의 아우)

경종은 4년 간의 짧은 재위를 끝으로 창경궁 환취정에서 37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금천교가 너무 반듯하여 감상을 시작하면서 흥이 반감되었다.

리얼리티가 떨어지면 복원하느니만 못한 것 같다.









의릉은 경종과 경종의 두 번째 부인 선의왕후(1705~1730)의 묘이다.

경종의 첫째 세자빈 단의왕후가 1718년(숙종 44) 승하하고,

같은 해에 선의왕후가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722년(경종 2) 왕비에 책봉되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의 능은

위-아래(앞-뒤)로 능이 자리잡은 '동원상하릉'의 형식인데

산천의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이 벗어나지 않도록

능역의 폭을 좁게 하고 앞뒤로 배치하였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뒤에 있는 경종의 능에만 곡장(담장)이 둘러져 있다.

능을 지키는 석호의 꼬리가 특이하다고는 하나 멀어서 보이지가 않았다.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둘러보며 능침공간을 자세히 보았다.








능침 바로 옆으로 구 중앙정보구 강당 건물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 건물로 인해서 능역이 훼손된 것이다.




















햇볕이 역광이 들어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았다.

한겨울에 눈 내린 왕릉을 보겠다던 지난 초겨울의 약속이

나의 게으름으로 무산된 것이 후회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