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더블린 도심에 질려버린 나는 외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애초에 그런 계획도 가지고 오긴 했는데, 두 말 할 것 없이 실행에 옮길 이유가 생긴 것이다.
아일랜드의 자연이 주는 절경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블린 인근에서 어디를 가볼 것이냐가 문제일 뿐이었다.
더블린 남쪽에 파워스코트(Powerscourt)라는 곳이 있다.
여기에 아일랜드에서 가장 긴 120m 높이의 폭포가 있는데 겨울이라서 입장이 불가능하고,
아일랜드 귀족 저택의 정원에 가기로 했다. 파워스코트 가든(Powerscourt Garden).
호텔과 스파가 들어서 있고, 아이들을 위한 미니어처 박물관 및 골프장이 함께 자리잡은 곳이다.
남의 집 정원을 홍보할 의도는 아니고, 이 일대가 더블린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려한 자연이라 하기에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여행 책자에서 손에 꼽히는 곳으로 홍보도 한다.
전날 저녁에 더블린 버스 노선을 열심히 봐둔 결과, 주말 9시 반에 그쪽으로 향하는 첫 버스가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미리 예약한 숙소의 사정으로 더블린 시내로 숙소가 변경되었는데
변경된 숙소에서 버스를 타야하는 곳까지 걸어서 10~15분이면 갈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9시 반에 온다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 10시에 오지않는가.
밤새 비는 내려서 상쾌하긴 하다만 그 습기가 가시지를 않아 추위가 느껴졌다.
성당과 정류장 옆에 자리잡은 거지는 자꾸 나에게도 돈을 달라고 하고,
미사를 보러 들어가는 노인들이 동전을 좀 주긴하더라.
더블린 도심을 벗어나 1시간 정도를 달린 이층버스는
왠지 착한 사람들만 살 것 같은 귀여운 마을에 나를 내려주었다.
기사님의 친절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도 하나 받아 챙기고 알려주는 방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2km 정도라고 해서 아무 부담없이 발걸음을 디뎠고, 솔직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차도 옆을 걸아야해서 자동차 소음은 거슬렸지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자전거 무리들이 자주 지나쳤고, 참 좋은 스포츠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아일랜드 북부의 자연 여행을 또 와보겠지만 더블린 인근에서
이 정도의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웃으며 걸을 수 있었다.
골프 필드는 이런 나라에서나 차려두는 것이 맞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손님을 실어나르는지 소형 헬기도 두어번 들어와서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오른편의 필드와 왼편의 나즈막한 산을 보며 데자뷰 발생...
골프장이 자리를 잡던 90년대 초중반 제주도 배낭여행을 하며 한라산 중턱을 걸을 때
딱 이런 느낌을 받았었다. 자연 경관이 너무 비슷해서 놀라울 뿐이다.
위험하고 외진 곳도 아니라서 상당히 걷기에 좋은 곳이었다.
차 소음만 없으면 최적이었겠지만 자동차 진출입로에 인도를 만든 것이기에 불만을 가질 수는 없다.
호텔과 스파 및 골프 클럽하우스를 지나면서 보이는 회색 건물, 바로 정원의 입장료를 파는 곳이다.
정원에 안들어갈까 생각도 했었다. 여길 꼭 돈을 내고 들어갈 필요가 있나 싶었고,
정원의 모양이야 특별할 것도 없을 것이기에 망설였는데 처음이니까 들어가보기로 했다.
1881년에 지은 건물 안에는 좀 아리송한 성격의 가게들과 레스토랑이 있었고,
꽤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무슨 정원, 무슨 정원이라 구역별로 이름 붙여진 전체 정원을 한바퀴 돌았다.
유럽의 겨울은 워낙 파릇해서 괜찮았다.
봄~가을이었다면 꽃들도 만발했겠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했다.
유럽에선 정자만 있으면 일본 정원이 된다. 어찌되었건 유럽에 전파된 일본 문화가 부럽다.
전혀 필요치않을 듯한 탑도 하나 있었고.
이곳을 걸어 들어오는 길에서도 느꼈지만 수려한 겨울 나무들의 모습에 잠시 넋을 놓아본다.
정원을 나왔을 때 날씨가 또 심상치않게 변해버렸다.
파란 하늘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옆으로 내리는 비와 우산을 집어삼키는 바람...
그래도 나는 걷는다!!
내가 버스를 타러 가는 도중에 나처럼 걸어서 들어오는 여행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 종점에 있던 마을의 정체는 대충 이러했다.
파워스코트라는 대 저택이 들어선 것이 1730년대였고,
저택으로 인해서 이 마을도 생겨난 것이었다. 큰 집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
그리고 마을에는 행정적인 역할을 하는 법원, 교회, 학교 등도 들어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도 뒤에 있는 작은 집이 국립 초등학교인데 제주도에 있는 마라분교보다도 작다.
1818년부터 아일랜드 국립 학교의 역할을 하였고, 2012년에 문을 닫았다. 지금은 개인 소유.
마을이 참 조용하다고 생각했는데 버스를 타러왔을 때의 생각은 달라졌다.
일대에 자연 관광지가 많아서 모든 차들이 이 작은 마을을 통과하는 탓에 소음이 생각보다 심했다.
그리고 더블린 시내로 들어오는 도로는 왜 이리 막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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