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술관은 지역색이 뚜렷한 재미가 있다. 독일 서부 라인강 유역, 동부의 베를린과 드레스덴,
그리고 남부의 뮌헨에서 각각의 개성있는 화풍이 성장하고, 화가들의 모임이 꾸려졌다.
특히 나의 눈에도 베를린의 다리파와 뮌헨의 청기사파들이 보여주는 회화의 비교는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세계의 유명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을 보면 독일 안에서 프랑크푸르트 또한 빠지지를 않는다.
그리하여 공항갈 때 외에는 관심도 없던 프랑크푸르트행 기차를 미리 저렴하게 구입하였다.
중앙역에서 내려 시내방향으로 아주 조금 걷다가 모젤가가 나오면 우회전...
그리고 직진하여 마인강에서 사람들만 건너는 다리(홀바인스텍, Holbeinsteg)를 건넌다는
구글 지도를 머리 속에 익혀두었는데, 모젤가 이정표에 미술관 이정표가 같이 있었다.
생각보다 몇 걸음 되지않아서 강 건너편의 미술관을 볼 수 있었다.
부르주아 계급의 기부로 이루어졌다는 현 프랑크푸르트 시립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쉬테델(Staedel) 미술관이다.
부자들의 작품 기증이라...
그림의 수집 과정에서 우리나라 재벌들처럼 탈세의 목적 등이 없었다면
그들의 기부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닐 수 없다. 환영과 칭찬 !!!
미술관의 구분을 소장 작품의 종류로 나늘 수도 있지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미술관인지도 나에게는 중요한
매력 포인트이다. 부자들의 작품 기증으로, 시민들의 십시일반으로, 왕족의 소장품 공개로, 그리고 식민지에서
가져온 작품들로 등등, 종류는 다양하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명성을 가진 프랑스와 영국의 특정 박물관이
나에게는 전승기념관으로 여겨지기에 아무리 명성이 자자한들 그쪽으로의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은행가이자 상인이었던 독일의 부호 요한 프리드리히 쉬테델(Johann Friedrich Staedel)은 1815년에 미술관을
세웠다. 그의 이름을 딴 쉬테델 미술관은 독일에서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며 지금은 국제적인 미술관으로의
명성을 얻고 있다. 3천여 점의 회화작품과 6백여 점의 조각품 및 10만여 점의 스케치와 판화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5백여 장의 사진 작품을 가지고 있다. 사진의 미술관 전면부는 1878년에 좌우로 증축을 한 것이다.
미술관의 전시 영역은 크게 4가지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3층 : 1300년대부터 1800년대의 걸작
2층 : 1800년부터 1945년까지의 근대 미술
1층과 미술관 측면의 신건물 : 기획 전시
지하 : 1945년부터 지금까지의 현대 미술
현재 1층에는 렘브란트의 동판화 작품들이 소중하게 전시되어 있다.
얼마 전에 방문했던 암스텔담 시내의 렘브란트 생가 2층에 있는 동판화 작업실이 생각나면서
그가 400년 전에 세기고, 찍어낸 많은 동판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인물화로 특히 유명했던 렘브란트지만, 매우 세밀한 동판화 작품들에서는 대다수가 풍경화였다.
대형 기획전시실에서는 현재,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거장인 뒤러(Duerer)의 작품이 중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 중이다. 이 기획전으로 인해서 토요일의 미술관은 만원이었다. 뒤러의 전시장을 찾은 대다수 중장년
독일인들은 매우 학구적이었고, 작은 그림 하나라도 놓치지않고 감상하며 공부하는 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후하고, 신사적인 매너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서로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았고, 옷차림이나 표정들 또한 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다.
사람에게서 풍기는 인간 자체의 향기만으로도 그들 중 몇몇은 바깥에서 보는 일반적인 독일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체로 이 미술관의 회원인듯..
뒤러의 기획 전시관 입구
S T A E D E L M U S E U M
2층 근대 미술관에서는 독일과 프랑스의 내노라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상징주의, 표현주의자들의 작품들이 쉬지않고 눈에 들어온다.
모네, 마네, 드가, 르노아르, 루쏘, 피카소, 샤갈... 독일의 키어히너, 마크, 벡크만 등, 그리고 노르웨의의 뭉크 또한.
근대 미술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은 이 미술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주요 작품 중 하나인 독일 최고의 대문호, 괴테를 그린 그림이다.
J.H. Wilhelm Tischbein (1751~1829), Goethe in the Roman Campagna 1787
독일 및 프랑스 화가들의 회화가 유명한 작품들이라서 아주 관람이 즐거웠다.
미술관에서 언제 작품을 얻게 되었는지, 누가 기증하였는지에 대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Edvard Munch(1863~1944), In the Tavern 1890
Ernst Ludwig Kirchner(1880~1938), Two Woman with a Washbasin: The Sisters 1913
위에 있는 키어히너의 작품은 1913년 그가 베를린에 머물 당시에 그린 것이다.
내가 독일 화가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의 베를린 시절 그림에서는 고유의 붓터치가 나타난다.
이 그림에서도 그 특성이 여지없이 보이고 있다. 이후에 스위스에 머물면서 이 표현방법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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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중세 ~ 1800년대의 성화와 일반 회화 작품 구역에도 상당한 명화들이 많이 있다.
Karl Friedrich Lessing(1808~1880, 독일), Jahann Hus an Constance 1842
Giovanni Bellini(1430/35~1516),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John the Baptist and Elizabeth 1490-1500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1606~1669), The Blinding of Samson 1636
Lucas van Valckenborch(1535~1597, 독일), Winter Landscape with Snowfall near Antwerp 1575
Giovanni Antonio Canal(1697~1768), View if the Bacino di San Marci in Venice 1730-40
위 화가를 카날레토(Canaletto)라고 부른다.
풍경화를 매우 정밀하게, 특히 운하(카날)을 많이 그리는데 자를 대고 그리는 것이 아니었을지 궁금하다.
Giacomo Francesco Cipper(1664~1736),
Domestic Scene with Musicians and Woman Spinning 17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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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술관은 2012년에 새로운 개관에 가까운 증축을 마쳤고, 이로 인해서 7천5백 평방미터의
전시 공간을 새롭게 확보하였다. 미술관 뒤쪽 정원에 대한 확장 공사를 위해 2008년에
국제 공모전을 열었고 프랑크푸르트의 건축사무소 schneider+schumacher가 당선되었다.
그들의 설계에 따라 지하 공간에 대한 확장을 하여, 현재는 미술관의 자랑으로 여겨잔다.
2012년의 확장으로 시원하게 뚫린 지하에서는 자연광과 조명을 동시에 활용하여 답답하지 않았고,
천장도 높아서 현대작품을 전시하기에 적합했다.
이곳부터 천장은 미술관 뒤쪽의 정원
Leni Hoffmann(1962~ ), Sansibar 2012
현대 설치 작품은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한다.
Guenther Uecker(1930~), Sandmill 1970
Gerhard Richter(1932~ ), Boat Trip 1963
독일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리이터의 흐릿한 작품도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미술관 뒤쪽의 정원
Adolf Luther(1912~1990, 독일), Integration Wandlinsen 1986
기획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 옆 건물의 연결 통로와 미술관 건물에 직접 붙여서 증축한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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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큰 미술관에서 저의 개인적인 관람 패턴이 자리잡았는데 관람을 시작한지 3시간이 되면 두통이 생기기 시작한다.
머리에 들어간 그림의 수가 많기도 하고 관의 좀 탁한 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 잠시 기념품점에 가서 둘러보고, 미술관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 나가서 산책을 한다.
30여분 정도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봐야할 것을 생각한 후 선택된 작품만 집중 감상을 다시 한다.
오늘의 집중 감상 작품은 벡크만의 방.
막스 벡크만(Max Beckmann)에게 있어서 프랑크푸르트는 작품 여정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1차 대전 중이던 1915년 라이프치히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하였고, 그때 그는 31살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표현주의를 완성하였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49살까지 머물렀다.
나치 통치 중에 네델란드로 떠났고, 1947년에는 그토록 꿈꾸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생활은 오래 가지 못하고 1950년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벡크만이 프랑크푸르트를 모티브로 삼아 그린 3점의 회화작품이 있었다.
Max Beckmann(1884~1950), The Synagogue in Frankfurt am Main 1919
Max Beckmann(1884~1950), Ice on the River 1923
구시가지를 배경으로 얼어버린 마인강을 표현한 그림
Max Beckmann(1884~1950), Frankfurt Main Station 1942
현재의 프랑크푸르트 중앙역도 같은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이 미술관에서 가장 나의 마음에 와 닿았던 그림 하나....
요즘의 내마음을 잘 보여주는 듯,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Gustave Courbet (1819~1877), Edge of a Village in Winter 1868년 추정
꾸르베... 대학에 갓 입학하여 학교 앞 꾸르베라는 맥주집에서 마시던 낮술이 어찌나 시원했던지,
그림과는 상관없이 화가의 이름이 떠오르며 아스라한 옛기억이 동시에 스물거리고 올라왔다.
그때, 꾸르베 술집에 앉아있던 내가 미래의 어느 날 꾸르베의 그림 앞에 서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삶에는 미처 상관없는 듯한 우연의 겹침과 회상도 있다.
기대 이상의 그림 공부를 많이 한 미술관이다.
요즘 독일 미술계가 큰 고민에 빠졌다. 이미 국제 뉴스로 알려진데로 나치가 몰수한 미술품 1천 5백여 점이 발견되었다.
미술사를 다시 써도 될 정도의 명작들이 많다고 하니 그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고이 숨겨둔 주인공의 아버지가 친나치 미술상이었다. 이 작품들의 원주인을 어떻게 찾아서 돌려줄지와
이로 인해서 나치의 범법 행위가 핵심적으로 재부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독일 정부의 고민...
그래서 2년간 이 발견을 숨겼던 것인가?
샤갈, 피카소, 르노아르 등의 알려지지 않은 회화도 있다고 하니 보게 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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