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서든 미술에서든 기어코 가서 보고 느껴야하는 곳은 러시아라는 생각을 해왔다.
대문호들과 위대한 화가들, 음악이면 음악, 문학이면 문학, 춤이면 춤, 과학이면 과학, 기타 등등.
지금의 러시아는 정치가 후진적이어서 비록 이렇게 되었지만, 그들의 뚜렷한 문화적 과학적 족적들을
내 눈으로 안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 가보고 싶었던 쌩 페테스부륵 등을 예약했다.
그런데 딱 일주일 전, 우연히 러시아로 가려면 비자가 있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자... 독일의 옆옆 나라인데 여행비자가 필요하단 말인가?
한국주재 러시아대사관의 이메일 답변까지 받고서야 이 허망한 사실을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일주일 안에 내가 러시아 여행비자를 발급받기란 불가능했다. 이로써 나의 계획은 무참히
사라져야 했고, 혼자 똑똑한 척 다하던 한 인간은 위약금을 물어가며 금전적인 손해를 입었다.
마음이 무지 쓰리다...
핀란드 헬싱키(Helsinki)와 반드시 묶어서 가려고 했었던 그 곳 러시아.
헬싱키와 쌩 페테스부륵을 연결하는 기차를 취소하면서 러시아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100% 확정되었다. 봄부터 공부를 해두었는데, 이리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헬싱키에 느릿 느릿 도착해야만 하는 웃기는 상황이 벌어졌고,
28~9시간에 걸쳐 독일에서 헬싱키로 이 한 몸을 건내줄 배에 탑승하였다.
큰 배를 타고 하는 패키지 여행 자체는 적성에 맞지않지만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이런 류의 배는 좋다.
한국에서 가장 좋아했던 여행 과정인
목포에서 차를 싣고 제주도로 향했던 기억들이 무지 그리운 지난 밤이었다.
독일 북부 뤼벡에서 기차를 내려 다시 버스(30, 31, 40번)로 환승하였고,
한참을 달려 저를 '스칸디나비안카이 터미널' 바로 앞에 내려주었다.
아무튼, 독일의 대중교통 체계는 정말 최고임을 인정한다.
체크인이 매우 엄할 줄 알았으나, 여권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새벽 3시에 출항하는 배는 밤 11시부터 승선하였고, 배를 기다리는 곳에서 핀란드 할아버지가
말할 사람이 필요했던지 몇 마디 하고 가셨다. 특별히 뭔가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고,
니보다 먼저와서 기다렸던 탓에 할머니와 함께 꽤나 지겨웠던 것을 그냥 되풀이 하신 정도였다.
그런데 참으로 곱게 늙으신 두 분이었다. 저리 인자하게 늙을 수 있다면 인생을 꽤 잘 살았다는 의미일 터.
정확히 11시에 미니 버스가 와서 차없이 승선하는 승객들을 배 안까지 태워주었다.
배 회사는 핀란드의 핀라인(Finnlines)이었고, 예상대로 전용 관광용 여객선은 아니었다.
탑승객이 많지 않으니 침몰하더라도 구조용 보트 때문에 싸울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고,
휴~ 별이 반짝이고, 파도도 세지않은 적당히 찬바람이 불어주는 마음이 시원한 밤이었다.
계속해서 컨테이너 박스들이 배에 차곡 차곡 실리는 과정을 늦은 밤까지 내려다봤고,
나도 가끔 저런 큰 차들을 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밤에 그리 분주히 일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보고있자니 세상에는 나빼고 모두들 부지런히 살아간다는
생각에 다다랐고, 내가 너무 심하게 살고 있나?라는 자책을 잠시 하다가...
밤 1시 정도에 잠이 들어 잠시 눈을 떴을 때는 배가 출발하던 당시였던 것 같다. 진동을 느꼈으니까.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 11~12층 선상으로 올라갔더니 눈부신 아침이...
지난 밤, 그리고 배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몇몇이 나를 보고 지들끼리 속삭였다.
야판? 야판? 사람들은 왜 나를 보면 일본사람이라 생각할까? 일본 아니면 중국, 그 중에서 일본이라...
배 밖으로 가끔 스웨덴 땅이 보이기는 했으나
이곳은 지중해 바다가 아니기 때문에 배 안에서의 시간이 자칫 무료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지난 몇 년간 뒤적이지도 않았던 원고를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이젠, 뭔가 나올 수 있겠다는 다짐을 하며 유익한 선상의 시간이 흘렀다.
승객이 그리 많지 않은 탓에 배 안에서 이리 저리 사람들과 안부딛치고 옮겨다닐 곳은 많았다.
한참 망중한을 즐기고, 구름의 모양도 관찰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참으로 오랜만에 바다에서 노을을 감상했다.
그리고 또 아침...
육중한 배가 헬싱키 연안의 작은 섬들에 너무 근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도 하면서
구름낀 아침을 맞았다. 역시 북유럽이라 독일과는 체감 기온이 달랐다.
아침 8시 경에 배는 항구에 정박하였고, 헬싱키 관광에 대해서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매우 친절히 지도를 펴서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9시 경에
배 안에서 미니버스에 탑승하였고, 바로 버스 정류장 앞까지 이동하였다.
경찰 두 명과 마약탐지견 같은 개 한마리가 나를 지켜보다가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이것이 진정한 입국 심사인가? ^^
버스를 타고, 다시 전철(메트로)로 갈아타고 헬싱키 시내로 향했다.
그런데 헬싱키가 왜 이리 편하게 느껴지는지 첫 행선지로 향하는 전철에서 잠이 들었다.
센트럴 어쩌구하는 소리에 일어났고, 헬싱키 중앙역 다음 전철역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기 전에 오전 10시에 브런치를 먹으며...
무선 와이파이가 잡혀서 인터넷도 하고, 헬싱키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지상으로 나오기도 전에 핀란드 헬싱키에 대한 느낌이 좋았다.
공공 지역에서 와이파이를 무료로 제공하는 점도 그렇고,
외관과 실내 모두 강렬한 오렌지 전철의 느낌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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