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좋은 기억

양파로 인한 그리움

스콜라란 2011. 11. 29. 19:43

 

   여행지에 가면 물갈이를 하며 배가 살살 아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는 무디디 무딥니다. 살림도 거의 날라리와 사이비 수준으로 했던지라 농산물에 대해서 거의 무지합니다. 그런데 독일에 와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이래서 한국 사람은 한국 농산물을 먹어야하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입과 혀에 익숙한 그 재료들이 그립습니다.

 

   한미 FTA의 국회 통과가 된 후 KBS 뉴스의 첫 기사에서는 FTA가 우리 생활에 미칠 영향을 보도하면서 9천원대인 체리를 앞으로 7천원대에 먹을 수 있다는 내용을 전했습니다(나꼼수 참고). 그 많은 자유무역협정의 항목 중에 하필 미국산 체리를 예로 든 것도 완전 개그입니다. 기자들인 뭔 생각을 하며 기사를 만드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래 체리 싸게 먹어서 좋겠다. 젠장!"  체리 한 주먹을 7천원에 사먹는 것도 서민들의 주머니에서는 부담스러울텐데 왜들 이러는지요. 첨예화된 갈등을 불러오고 있는 의료수가, 의약품 등은 놔주고 하필 체리를... 저도 체리 좋아하지만 앞으로 한국가면 체리 싫어질 것 같습니다.

   한미FTA로 우리나라의 농산물 산업이 폭삭 망할지 모릅니다. 위기를 기회로 살리기에는 국가의 농민들에 대한 지원이나 대책을 믿을 수 없습니다. 자연재해로 유리하우스 등이 띁겨나가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그간 계속 지적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농민들 스스로 생업을 거두던가, 끝까지 생존을 위해 농사를 짓던가하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있는 스위스는 자국의 농산물 보호를 위해서라도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는 강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스위스, 덴마크 등 농업강대국의 국가정책이나 경제모델은 전혀 참고하지 않고, 오로지 미국과만 국가의 생사를 논하는 것인지... 뼛속까지 친미주의자인 대통령과 그의 형님 정치에 우리가 계속 흔들려야하는지...

 

   얘기가 너무 엄한데로 흘렀는데요, 오늘은 독일의 양파에 대해서 저의 소감을 간단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앞서 말한데로 살림에 거의 빵점이라서 뭔가를 모르는데도 이 양파만큼은 너무 다르다는 것은 느낍니다. 우리의 양파는 찌게요리 중 음식물 속에서 가열이 되면 양파가 흐물흐물해지면서 부드러워지지 않나요? 그런데 독일 양파는 아무리 김치찌게를 끓이고, 떡복이를 하고, 다른 음식에 같이 넣어도 '기'가 죽지 않습니다. 양파의 향과 맛이 음식에 잘 베이지도 않고, 혼자 땡글하니 살아서 아작 아작 씹힙니다. '탱글'과 '아작'이라는 의태/의성어가 이렇게 부정적으로도 표현가능한 것은 독일 양파 때문입니다. 

 

 

 

   또한 양파를 설 때 얼마나 매운지 아십니까? 양파라는 것이 원래 맵겠지만 독일 양파는 칼질을 할 때마다 매워서 도저히 맨정신으로 자를 수가 없습니다. 창문을 열어도 맵고, 이제는 잠수용 수경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는 진짜로 수영안경을 쓰고 양파를 썬다고 합니다. ^^ 얼마나 매운지 독일맛에 제대로 당하고 있습니다.

 

   타지의 재료와 농산물로 우리나라 요리를 해봐야 그 맛이 안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쌀도 이곳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흰쌀을 우유쌀(독. Milchreis)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 쌀처럼 동그란 쌀 외에도 길죽한 쌀까지 매우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독일 요리프로그램을 보면 얘네들이 쌀로 밥을 지어서 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쌀이 우리나라에서 먹는 밥처럼 맛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 전에 한국 슈퍼마켓에 가서 이천쌀 9kg 짜리(약 4만원)를 카트에 끌고 왔습니다. ^^

 

 

자주 사먹는 흰쌀 500g = 1,500~2,000원

 

 

   저는 대학 때 맥도널드 등으로 인해서 우리가 음식 식민지가 되는 것은 아닐지를 우려하는 글을 간단히 쓴 적이 있었습니다. 글로벌화가 전세계의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인간 문화 유산의 독창성과 인종의 고유 특성을 무너트리는 것이 아닌가를 역설한 대목이었는데 요즘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기후 변화로 인해서 우리나라의 먹거리가 우리나라 국토나 해안에서 생산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체감하는 대표적인 먹거리가 황태입니다. 강원도에서 겨울 내내 말리는 황태도 모두 러시아산입니다. 러시아산을 들여와서 우리 식으로 말린 후 유통시키는 것입니다. 국내 생산량이 극히 적거나, 비용에 비해서 직접 잡는 것보다 수입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의 먹거리를 잃어버리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맛을 잃어버리는 것과 우리의 체질이 외국 먹거리로 인해서 바뀌는 것... 우리가 우리 먹거리를 보호해야 할 벼랑 끝 단계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독일에서 동글 동글한 가지를 볼 때마다 그 모양새가 귀엽긴 합니다. 동시에 한국의 긴 가지와 그 가지를 길게 잘라서 무쳐먹는 반찬이 더 생각납니다. 체질적으로 저는 100% 한국사람임이 분명합니다.

 

 

 

  

*70% 정도의 마음을 담는 일기 비슷한, 편히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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