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좋은 기억

문명세계

스콜라란 2011. 11. 22. 05:20

 

 

 

   외국에 와서 살며 정말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 핸드폰이었습니다. 이렇게 인터넷이 발달한 사회에서 핸드폰이 가끔은 왜 있어야하나 싶기도 하고, 핸드폰 챙겨다니는 것은 시간 확인하는 일 외에 딱히 요긴하지도 않고, 급히 전화할 일... 있기야 하겠지만 글쎄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버티다 버티다 핸드폰을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삼성, LG... 유럽에서 잘~ 팔립니다. 곳곳에 광고도 많이하고, 인터넷 무한사용이 가능한 스마트폰으로 삼성과 엘지폰 많이 들고 다닙니다. 저는 집에서 하는 인터넷 사용시간 만으로도 너무 충분하여 핸드폰에 까지 족쇄를 차고 싶지 않았고, 간단히 전화와 문자만 제한적으로 쓰는 폰으로 개통을 하고 말았습니다. 왜 버티다 버티다 10개월 만에 만들게 되었느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화는 그래도 필요해서 집에 인터넷전화를 설치하려고 하자, 저의 개인 전화번호가 없어서 신청을 못 받겠다는 것입니다. 전화가 없어서 전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연락 가능한 전화가 없어서 안된다는 것입니다. 참 나... 다른 주변 사람의 전화번호라도 입력해야지만 신청이 된답니다. 그렇다고 옆집에 똑똑해서 미안한데 나 전화/티비/인터넷 신쳥하려고 하는데 니네 집 전화번화 좀 알려주면 안되냐는 말은 죽어도 못하겠어서 그냥 제가 핸드폰을 개설하고 말았지요. 아~ 답답. 그래서 핸드폰 개통...

 

   집에는 인터넷 전화기도 한대 있고, 티비는 90개 정도의 채널을 잡아주고, 인터넷도 뻥하고 뚫렸습니다. 인터넷은 개인 일처리 및 블록질을 위해서 자주 들어오는 편이고, 본격적으로 티비 시청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셋톱박스(?) 커다란 것이 티비 밑에 놓여졌고, 옆에는 전화, 그리고 인터넷 모뎀... 드디어 제가 독일의 문명세계에 완전히 진입한 것입니다. 최대한 정리를 해도 한계가 보이는 전선 가닥들이 그 증거죠.

 

 

 

   어제 오늘의 문제는...

   상당히 개방적인 사고방식과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생활을 한다고 스스로 자칭하고 있는데 이곳 티피 프로그램의 진면목을 보고 좀 충격 받았습니다. 알고는 있었는데도 좀 마음이 그러네요. 일단 요즘은 사회적인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독일 극우파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옵니다. 이들이 외국인과 독일경찰에 대한 연쇄살인에 가담해왔고, 우연히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일 사회가 좀 술렁였습니다. 그 외에는 그리스로 인한 유럽연합의 재정적인 문제들이 주요 뉴스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뉴스는 한국 포털사이트에서 뜨는 정도이니 여기 사나, 한국에 사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유럽은 티비에서 준 포르노가 나옵니다. 밤 11시가 넘어가면 후반부의 케이블 채널들에서 모두들 벗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 남녀 구분없이 벗고, 고만 고만한 짓들을 하고 있어서 유치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계속해서 스트립 '쑈'만 나오는 곳도 있고, 설정한 후 성관계를 맺는 프로도 있고, 부부가 나와서 자신들의 관계를 공개하는 프로도 있습니다. 준 포르노가 아니라 포르노죠... 그런데 며칠 전에는 11시에 메인 채널, 우리로 말하면 KBS나 MBC 급의 방송을 보고도 놀랐습니다. 이게 제정신인가...

   다큐 형식으로 만든 프로그램인데 3팀이 나왔습니다. 모두들 뭔가를 배우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한 사람은 스트립쇼를 배우고, 중년의 한 커플은 인도풍의 요가스튜디오에 가서 나체로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행위를 배우고, 젋은 커플은 여자를 남자가 묶어서 행위를 하게 만드는 그... Bondage를 배우는 것입니다. 당근 3팀 모두 벗지요. 우선 스트립쇼를 가르키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직업이니까 가르키고, 배우는 과정이 있어야겠다 싶습니다. 두번째는 동양의 신비 문화를 배경으로 나체 마자시를 하는 것이 꼭 방송으로 나오는 것에 놀랐는데 그것도 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신비감을 높이려고 부처님을 가게에서 팔고 있었나봅니다(blog.daum.net/bodyflow/567).

   좀 한대 맞은 느낌이 드는 것은 세번째 팀인데요... 이건 성적 가학주의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디스트, 메저키즘 등의 단어들을 이런 묘사에 사용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나체로 묶이고, 나체로 묶어서 즐기는 놀이의 형태로 봐야하는 것인지...

 

   저는 방송을 보는 도중 몇 번이나 티피 앞 테이블에 올려 둔 산타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나는 왜 산타할아버지에게 요지경 세상의 해법을 요구하는가?'

 

 

 

 

   테레비... 별로 재미없습니다. 한국에서나 독일에서나 저는 결국 같은 프로를 많이 보게 됩니다. SUV, CSI, 프렌즈 등의 미국 드라마 또는 만화, 채널 돌리다 우연히 만나는 괜찮은 영화, 독일 뉴스와 다큐멘터리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만화 '은비와 깨비'도 가끔 나옵니다.) 이것도 독일어가 늘지않아서 노력해서 보긴 하는데 쏠쏠한 재미는 못 느낍니다.

   세상은 국가 간에도 개인 간에도 너무 너무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나치게 연결되어 잘 모르겠는 사람이 뜬금없이 친구하자는 이메일을 받는 것도 싫고, 그렇게 연결되어 정서적으로 무슨 덕을 보겠나 싶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아예 개정도 안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결국 세상과 연결되고, 사람 속에서 살아야하는 것이 정답인데, 오늘도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만 소극적으로 정보를 취득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점점 문명세계가 무섭게 느껴집니다. 지난 번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말했습니다. 외계인이 지구에 오는 것은 유럽 탐험가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건과 같을 것이다라는 요지였습니다. 신대륙이라 명명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결국 몰살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의 문명세계에서 새로운 문화나 정보에 피해를 보고 싶지도 않으며, 제가 누군가에게 쇼킹한 자극원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각 개인의 개성이 잘 보존되고, 발전할 수 있는 문명사회이길 바래봅니니다. 획일화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 티비는 밤을 드라마가 장악하고, 독일 티피는 밤 11시가 넘으면 사람들이 벗으면서 너무 획일화됩니다.

   이도 저도 싫으니까 추운 겨울 동안에는 독일어 공부에 열 올려야겠다고 다짐합니다.

 

 

*70% 정도의 마음을 담는 일기 비슷한, 편히 쓰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