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금촌까지 전철을 타고, 이후 900번 버스를 탔다.
'인삼사우나' 정류장에서 내리든 더 지나 '법원1리, 이주단지'에서 내리든
800-900m를 걸어야 한다.
법원 1리에서 내려 갈현3리 마을회관을 지나 장릉에 도착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인데 유난히 차가 많았다.
관리소 직원도 평일에는 5-6대의 차량만 들어온다고 했다.
무슨 일일까?
제사(기신제향)가 있는 날이라서 이씨 종친들 및 관련자들이 많이 방문하였다.
토요일 오전에 조용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내 생각은 시작부터 틀려버렸다.
제사를 기념하여 조선왕릉 제향 사진전을 지나칠 수 있었다.
남자 노인들이 많이 모여있던 재실은 통과
물은 흐르지 않았던 금천교
제향공간인 정자각에는 제사 준비가 한창이었고, 파라솔 등의 기물은 아쉽게도 내 눈을 방해하였다.
인조와 인혈왕후의 합장능(봉분)이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쉽고...
첫 왕릉은 17세기에 만들어졌으나 103년 후에 이장을 하면서 18세기 석물도 추가되었다.
그래서 17, 18세기 석물 양식의 특성이 모두 남아있는 것이 파주 장릉이 특성이다.
비각이 있던 곳의 장릉 비문 역문을 그래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인조 현문열무명숙순효대왕은 만력 을미년(1595, 선조 28) 11월 7일(을해)에 탄생하여
처음 능양군에 봉해졌고, 천계 계해젼(1623, 인조 1)에 즉위하였다.
숭정 기축년(1649, 인조 27) 5월 8일(병인)에 승하하니 재위는 27년이고 나이는 55세이다.
왕비 명덕 정순 인열왕후 한씨는 만력 갑오년(1594, 선조 27) 7월 1일(정축)에 탄생하여
계해년(1623, 인조 1)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숭정 을해년(1635, 인조 13) 12월 9일(을유)에 승하하니 나이는 42세였다.
처음에는 파주읍 북운천리에 묘좌로 산등성이는 같으나 혈자리를 달리하여 장사되었다가,
승정 기원 후 103년(1731, 영조 7, 신해) 8월 30일(경신)에
교하 구읍 자좌 언덕에 이장하고 합장하였다."
처음 왕릉에 화재가 잦고, 능 주변의 뱀과 전갈 무리가 석물 틈에 집을 짓게 되면서 이곳으로 이장한 것이다.
향로 :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
어로 :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
변로 : 신하들이 걷는 길
장릉의 향로와 어로는 조선왕릉의 원형이 잘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제사 준비하는 남자 노인들이 조용히 걷는 나에게 돌 밖으로 나가라고
잔소리를 해대서 좀 짜증이 났다.
왕릉에서는 이 어로를 걷는 것이 탐방의 맛인 것을 모르나?!
제사 시작하면 알아서 사라질텐데 어지간히들...
왕릉 바깥의 풍경은 평화롭고,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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