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에서 당동IC를 나와 좌회전을 해서 자유로 밑으로 오면
고려말, 조선초기의 정치인이자 청백리의 표상인
황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냈다는 반구정에 갈 수 있다.
이곳의 현재 명칭은 황희선생유적지로 되어있다.
국가 중요 사적이 되지 못한 이유는
방촌영당이나 반구정이 한국전쟁 중 전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방촌영당은 경기도 기념물 29호,
그리고 반구정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파주에 있는 다른 유적지인
율곡선생유적지보다 이곳이 더 좋았다.
계절이 바뀌면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박물관 격인 방촌기념관은 나오면서 둘러보았다.
능에 가면 향로와 어로(왕의 길)가 있듯이
입구에서 신삼문의 의미를 알아두었다.
가운데가 신의 문, 좌우가 인간이 드나드는 문.
그래서 가운데 문은 대부분 닫아둔다.
문을 들어서면서 오른편에 바로 정자가 보였다.
월헌사(좌)와 방촌영당(우)
방촌영당(좌)와 경모재(우)
월헌사
방촌영당 (경기도 기념물 29호)
경모재
중요한 내용!!
현재 양지대의 자리가 원래의 반구정 자리였다는 사실.
신을 벗고 들어가 양지대에 앉아 바라보는
임진강의 넓은 하구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낚시하는 어부들의 모습, 그리고 휴전으로 인한 철책선마저도 여유롭게 보였다.
황희 선생의 노년기때 처럼 갈매기들이 날아다녔다.
멀리 임진각의 철로도 보였다.
양지대와 아래의 반구정은 199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지금의 양지대 자리에 있었던 반구정이 왜 아래에 개축되었을까?
단체 꼬마 손님들이 들이닥쳐 엄청나게 떠들어서 내가 나와버렸다.
원래의 반구정이 있었던 자리에 양지대가 있다.
방촌기념관을 둘러보는데 옥서진이라는 것을 보았다.
나도 요즘에 문서가 날아가지 않게 받치는
돌이나 쇠붙이 류의 서양식 문구류를 보는 중이다.
나는 '문진'으로 알고 있는 물건인데 옥으로 만든 '서진'이라면 더 귀할 듯하다.
불에 타서 없어진 유적지를 1998년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재건한 곳이지만
임진강 앞의 이곳이 나에게는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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